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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엽
찌또대통령은 자기 나라를 방문하신
이 유화는 빨찌산투쟁에 직접 참가하였던 이름있는 미술가가 그린것인데 1943년 11월 산간도시 야이쩨를 해방한 인민해방군 군인들과 인민들의 감격적인 상봉장면을 형상한것이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이날을 도이췰란드파시스트를 반대하는 투쟁에서 전환의 날로, 국경절로 정하고 해마다 성대히 기념하였으며 이 유화를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보관해두고 널리 자랑하고있었다.
찌또대통령은
그때 찌또는 세계에서 지도자로 인정하는 사람은
찌또는 조선이 그 누구의 눈치를 보는것도 없이 제할말을 다하며 배심있게 나아가고있는데 대하여 부러워하면서 자기들은 패권주의를 반대하여 《자치제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있지만 이런저런 압력과 시비중상때문에 머리를 앓고있다고 마음속고충을 터놓았다.
그러는 그에게
찌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나라 당은 앞으로 자주성을 튼튼히 지켜나가겠다고, 절대로 《아들당》이 되지 않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후부터 찌또는 대국주의자들이 자기 나라의 내정에 간섭할 때마다 우리는 《아들당》이 아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아버지당》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주적립장을 견지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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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66(1977)년 8월 찌또대통령이 조선을 방문하였다.
당시 이 소식이 전해지자 대번에 세계보도계의 초점으로 되였는데 영국의 한 통신이 그의 조선방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평하였다.
《찌또는 묘하게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사이에서 명망있는 인물일뿐아니라 쁠럭불가담나라들속에서도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쁠럭불가담운동의 창시자의 한사람으로서 그리고 〈자치제사회주의〉의 제창자로서 명망이 높다. 특히 자존심이 강하여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는〈완고한 거물〉로 세계에 알려져있다. 쁠럭불가담운동의 거장들중의 마지막인물인 찌또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먼 극동에로 려행하게 된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시 쁠럭불가담운동은 진퇴량난의 위기에 빠져들고있었다. 이 운동의 창시자, 원로로서 괴로움에 모대기던 그는 어느날 자기 보좌성원들에게 출로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조선에 가서
보좌성원들은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못한데 조선방문문제를 고려하는것이 어떤가고 하였다. 그때 찌또의 나이가 85살이였던것이다.
그들에게 찌또는 나는 꼭
찌또는 그날 밤이 퍽 깊도록 흥분으로 가슴을 들먹이며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수원들에게 《
《완고한 거물》로 소문난 찌또가 아래일군들에게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숨김없이 고백하기는 이때가 처음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