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 / 그리움의 세계


위인칭송의 목소리 9

생의 마지막순간까지(1)

주체79(1990)년 9월말 어느날 저녁 일본 도꾜의 나리다비행장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리는 70객의 한 늙은이를 기자들이 에워싸며 앞을 다투어 질문을 들이댔다.

평양방문소감이 어떤가, 지금의 기분상태는 어떤가, 당신이 김일성주석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것이 사실인가 …

늙은이는 붐비는 기자들을 일별하고나서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정말 훌륭한 방문이였소. 다만 아쉬운것은 너무도 뒤늦게 이런 걸음을 한것이요.
내가 눈물을 흘렸는가구? … 그렇소. 눈물을 흘렸소.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고 그분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것을 나는 숨기지 않소. 왜냐하면 진심으로 존경하는 위인에게 매혹된것은 결코 수치가 아니기때문이요.
나는 비록 생의 말년을 사는 정치가이지만 김일성주석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것이요. 이것은 정치가로서 나의 마지막사명이요.》

그가 바로 처음으로 조선을 방문하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일본의 전 부수상 가네마루 싱이다.

일본정계의 실력자로서 친미반공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내세우고 한생을 살아온 그가 단 한번의 평양방문으로 이런 변화를 나타낸것은 일본은 물론 서방정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는 여러 인터뷰들에서도 《김일성주석은 내가 상상했던것보다 더 위대한분이시며 진심으로 존경하는 대선배》이시라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경모의 정을 서슴지 않고 터놓았다.

일본의 우익세력이 아우성을 쳤다. 그도 그럴것이 가네마루라면 일본정국에 《난국》이 조성될 때마다 정치적판단을 내리는 흑막속의 최고권력자로 알려져있었던것이다.

생의 마지막순간까지(2)

일본의 우익반동들은 평양으로 기울어진 가네마루를 돌려세우기 위하여 비렬하게 책동하였다. 우익잡지들에 그에 대한 험담기사를 내는가 하면 방송차로 그의 사무소와 집주변을 돌아치며 비방중상을 일삼았다.

지어 폭력배들을 내세워 그에게 협박편지를 보내고 위협전화를 걸게 하였다.

가네마루 싱은 반동들의 발악이 우심해지는 속에서도 3당공동선언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위대한 수령님과 한 약속대로 조선로동당창건 45돐 경축행사에 일본자민당 간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보내였다.

일본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그이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를 가리켜 《김 가네마루》라고 불렀다.

주체80(1991)년 2월 조선로동당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대표단성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진심으로 김일성주석각하를 위대한 정치가로 높이 존경하고있으며 조선의 편에 언제나 서있을것이라는것을 믿어주기 바랍니다.
내가 김일성주석각하께 생명을 바치겠다고 하는것은 바로 그 길이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인정하기때문입니다.

내가 김일성주석각하를 위하여 생명도 바치겠다는것을 그이께 정식 보고드려주기 바랍니다.
가네마루라는 사나이는 마차와 같이 뒤로 갈줄 모르고 오직 앞으로만 꿋꿋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앞으로 끝까지 김일성주석과 같은 길을 걷겠습니다.》

그때로부터 5년후 8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자기의 신조를 저버리지 않았다.